'세련'된 오브제
고연수(미술평론)
 
"나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연과 더불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방안에 누워 햇살이 비치는 문살 창호지를 바라보곤 했었는데, 다양한 선과 형태가 보였다.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가 또 다른 풍경 속에서 뛰어놀곤 했다."-작가 진미정 작업노트 중에-
 
마치 글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약식화 된 기호처럼 보이기도 한 패턴들은 빼곡히 규칙적으로 나열되어있기도 또 한편 오밀조밀 몰려있기도 하다. 작가 진미정의 작품 안에 구성된 조형언어들은 단순화된 형태로 익숙하지 않은 형식으로 뒤엉켜있다.
시각예술 평면회화에서는 재현하고 싶은 대상을 대상과 흡사하게 그려낸 사실적회화에서 어느덧 기록과 사실적 재현에 목적이 아닌 캔버스 프레임 안에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하고자하는 화가들의 욕망이 추상화라는 방식으로 파생된지 꽤 오래전이다. 현재 추상화들은 대상형태의 뭉개짐의 정도를 벗어나 가장 작가 본인다운 조형적 언어와 감각으로 캔버스안을 자기화시키는 작업들로 이미 많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왔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 진미정의 작품은 그간 그가 쏟았던 열정만큼이나 작가 진미정다운 스타일의 작업을 구축해 온 것으로 보인다. 대개 추상화에선 창작자들이 겪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고충이 있다. 사실적 재현형식을 과감히 버리는 대신 관객에게 예술이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자유로운 의식감각의 확장성을 주느냐, 추상화의 단골 작품명이었던 'Untitled(무제)'로 관객에게 작품 자체를 던져놓는 무책임함이냐. 두 측면은 그야말로 한 끗 차이고, 추상화가들이 풀어나가야 하는 최대 난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어떠한 형식의 예술이든 이처럼 중요한 갈림목에서 결정내릴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은 있다. 관객의 눈과 마음을 훔쳐 마음껏 여행시키고 결국 이 특별한 여행의 종착지는 반드시 '그 작가의 그 작품'이어야 하는 밀당의 시각적 재현의 기술, 이것이 적어도 현대예술이 난해하고 무책임하다고 투덜대는 관객으로부터 그럼에도 예술이라고 고이 인정하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명분일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라고 불리는 창작자의 과업은 또한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4차원의 세상을 2차평면에 그럴듯하게 담기 위해 고안해 낸 원근법들은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다방면으로 시도되었고 그로인해 우리는 납작한 평면을 마주하면서도 끝없이 깊은 공간을 내다볼 수 있었다. 곧이어 평면을 넘어서 캔버스와는 절대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았던 이물질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평면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과 도피를 꿈꿔왔으며, 결국 평면회화 스스로의 한계 인정과 동시에 끝없는 무한확장성까지 과감히 시도되었다. 그리고 결국 지금, 현대시각예술은 더 이상 이런 물질에 대한 실험보다는 작가가 지닌 예술적 의의와 의미가 작가에 의해 선택되어진 흥미로운 재료와 기발한 재현기술로 버무려지는 작업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작가 진미정의 작품을 단순히 평면회화라기보다 우리 눈높이 벽에 고스란히 걸려있는 오브제로 보아야 하는 것이 좀 더 진솔하지 않을까. 그의 세련된 작품을 하고싶다는 담백한 바람은 그래서 그대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작가 진미정의 작품에 빠져든 관객이 각자의 자유로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 지점에 그의 작품은 어떠한 당위로 남아있을까. 그에게 작업을 언제 시작했는지가 아닌 왜 시작했는지가 중요한 것은, 여기에 비로소 그의 작품의 존재이유가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 진미정이 처음 수채화를 접하고 빠져들어 계속 덧칠을 했을 때 검은색만 남았던 그 지점, 결국 빠져들어 지워진 건 자신의 모습이고 역설적이게도 그 지점에서 본연의 모습이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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